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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영옥 시인의 '봄은 봄이래요?'

   
 


[불교공뉴스-문화] 봄은 봄이래요?

지난 겨울
지구 온난화가 데리고 온
압록강의 바람은
추웠다

내년쯤
중국 하얼빈 바람까지
한반도를 점령한다니
봄은 올까

산과 들에 피돌이를 마친
개나리진달래산수유생강나무
어느 구천을 떠돌다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저마다 돌아가고 싶은 길에
심장을 박고
범람하는 중국산에

떼로 실신하여
제발로도 한 발자국 떼어놓지 못하는
우리는 구경꾼.

   
 


6월에도 추운 사내

내리쬐는 자외선과
콘크리트 바닥에서 일어서는 온도가
만나는 다혈질의 6월,
점심을 해결하러 가는 길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

그니가 스치고 지날 때마다
막걸리 트림 같은 시큼한 냄새
겨울 점퍼에 목도리를 두르고
정신을 놓은 듯
혼잣말을 반복해내는
그 사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살아낼 수 없는
까닭 있었을까
그의 터덜거리는 걸음 뒤엔
비릿한 눈물 같은 짠내가 피어오른다

생은 온전할 수 없어
반쯤 맥을 놓아버렸는지 몰라
소란스런 세상에
단단히 자물쇠를 잠근
거리의 6월.

   
 


영국사의 가을

치렁거린다고 잘라낼 수도 없었던 시간
시시한 일상 속에서
가을에게 나를 놓아준 날
천태산의 모든 바람은
영국사 절마당까지 찾아와 교태를 부린다.

당산제에서 바라춤을 추고 있는
비구니의 고깔모자 위에 나붓대다
은행나무 잎을 흔들다가
가을을 줍는 아이의 손등까지 찾아왔다.

천년을 잊지 않고 찾아온
그 많은 가을들 중에서
오늘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자비로 곱게 물들었다.

 

   
 


<약력>
이영옥 시인은 196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1988년 오늘의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1993년《해동문학》으로 등단, 제6회 대전예술신인상, 제22회 대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날마다 날고 싶다』 『아직도 부르고 싶은 이름』 『당신의 등이 보인다』 『가끔 불법주차를 하고 싶다』 『길눈』 등이 있으며, 2015년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아 여섯 번째 시집 『알사탕』을 상재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학사랑협의회, 대전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문학잡지《문학사랑》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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